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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솔] 데우스 엑스 마키나

취_직 2017. 3. 2. 20:01
사실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종류의 사실은 모르기 어렵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존재였다. 좋고 높은 의미로. 사람들 위에 설 수 있다는 건 명백하게 특권이다. 나는 그걸 웃으며 받아들였다. 쉬운 삶이었다. 미움받지 않는 법에는 꽤 능했으니까. 보통은 자신이 닿을 수 없는 곳의 누군가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면 한 걸음 물러서기 마련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그랬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줄 특별한 사람들을 고를 수 있었다. 그들이 나를 바라보고 열망하며 동경하게 할 수 있었다. 이것에 나는 어떤 악의도 담지 않았다. 그저 할 수 있었으니 했다. 오히려 모두가 행복한 일이었다. 리모도 소라도 나를 사랑했고 나도 그 둘을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은 적 없다. 그건 나도 진심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실수를 저질렀다. 그걸 실수라고 명명하는 것이 과연 적당한 처사인지, 또는 도덕적으로 옳은지 나는 아직까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나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소라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으며 무엇이 그녀를 괴롭게 하는지. 그래. 나는 알았다. 그 애가 자주 눈을 내리깔고 손톱을 뜯는다는 것을. 그럴 때마다 강렬한 두려움이 그 눈가에 내려앉는다는 것을.

단 한번의 손길이나 몇 마디의 말로 내가 모든 것을 바꿔버릴 수 있다는 것도.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소라는 사라졌다. 그게 실수였는지 오만이었는지 아니면 방관이었는지를 정의하려 들면 아직도 눈 앞이 어지럽기에 실수라는 단어로 흐지부지 마음을 가린다. 그건 실수였다.

그리고 리모. 그 사건은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의욕도 품지 못했다. 나 또한 같은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무너지는 그에게 손을 내밀거나 위로를 건넬 상황이 못 되었다. 시간이 흘러서야 그를 달래고 방향을 안내해 줄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는 내 말대로 했다. 죗값을 치르고 나에게로 돌아왔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나날이었고 나는 내가 삶의 장면들을 통제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지금에서야 나는 고백한다. 그 모든 것이 다른 것이 아닌 기만이었음을. 네가 쉰 목소리로 날 저주하며 내 손을 놓는 이 비극의 끝에서야 절절하게 깨닫는다. 너는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꿰뚫어 보았다. 나는 틀렸고 비겁하다. 안일했고 멍청했다. 있는 힘을 다해 어린 너를 붙드는 어린 나를 상상해 본다. 그랬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겠지.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나고 너는 지금의 너다. 눈물이 흐른다. 후회라는 감정은 생소하며 끔찍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력하다. 공허한 외침.

소라야.

나는 이 파국을 구원할 수 없다. 네가 추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