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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솔] 위태로움을 위하여
취_직
2015. 7. 20. 01:34
위태로운 이들은 위태로운 이를 알아본다.
너를 처음 보았던 때를 기억한다. 고집스레 입술을 다물고 자신이 만든 로봇을 손가락이 부서져라 힘껏 쥐고 있던 너는, 떨고 있었다. 마음의 힘이라느니 마음 편한 소리를 하며 찬란하게 빛나는 또래 소년을 바라보는 너의 뒷모습에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의 안에서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던 감정이, 내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고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애증이었다. 그건 네 것이고 내 것이었다. 우리 둘만의 비밀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함께 로봇을 만들자, 라며 어깨동무를 해오는 천재 소년은 절대로 공유하지 못할 감정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침묵을 지켰고 대신 잠시나마 유대를 얻었다. 도운이 듣는다면 슬퍼하겠지만.
우리는 결코 도운처럼 될 수 없어.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고, 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옛날, 나는 한 치의 의심 없이 내가 도운과 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 나의 세계가 무너지기 전까지는. 너는 경멸하겠지만, 변명하자면 사실 우리의 처지는 조금 달랐다. 같은 상황의 위태로움이라도 시선의 차이는 있다. 나는 우정과 사랑이라는 한 가닥 줄에 매달려 있었고, 너는 그 줄을 타고 있었다. 그 줄을 놓치는 순간 절망뿐이라는 것을 빛이 비치는 위만 올려다보던 나는 몰랐다. 너는 아주 잘 알고 있었겠지. 항상 저 밑바닥을 내려다보며, 언제 균형을 잃게 될까 가늠하던 너는, 잠깐의 실수로 추락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렇게 일부러 몸을 기울여 떨어져 버렸겠지.
하지만 소라.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우리의 위태로움 따위가 다 무엇이겠어. 아무도 우리의 슬픔을 기억해 주지 않을거야. 악당이 되도록 정해져 있던 어찌할 도리가 없는 그 길은 우리 외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 우리의 합당한 변명을 들어줄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아. 이 사실을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누군가는 그토록 울지 않아도 되었고 누군가는 살아남았을지도 모르지.
너는 악당으로 죽었어. 그게 안타까워. 아무도 너를 왕소라로 기억하지 않겠지. 가엾은 나의 추억 저편의 소녀를, 위태로운 외줄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걸어가던 그녀를,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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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읽다가 너무 써야만 할 것 같아서 삼십분만에 쓴 림솔. 이런 의욕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다......
저번 훤솔도 그렇고 나는 소라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들어주고 싶나보다..... 소라야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