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팔목을 붙잡아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아무도 없는 점심시간의 보건실에 적막이 감돌았다. 서랍을 뒤져 연고를 찾아내, 핏기가 가시지 않은 뺨 위의 상처에 발랐다. 그녀의 입매가 일그러졌다. 가만히 있어. 나를 뿌리치려는 팔을 붙들고, 반창고의 포장을 뜯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허공을 쏘아볼 뿐.

 반창고를 그녀의 상처에 붙이며 나는 중얼거렸다. 왜 싸움도 못하는 왕씨 집안 아가씨가 그런 일진 무리들에게 덤벼들었담. 전교 석차 1,2등을 다툴 만큼 머리가 좋으면서 말이야.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가 내 손을 잡아챘다. 검고 깊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 날카로운 시선을 받아내기가 힘겨웠다.

 그녀는 빠르게 말들을 토해냈다. 숨도 쉬지 않고.


 "나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라고 했어."

 "......"

 "매일 냄새나는 쇳덩어리나 만지면서, 평생 혼자일 거라고 했어."


 나와 한참 눈을 마주치고는 떨던 그녀는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무언가 변명을 하려는 것처럼 다시 입술을 떼었다가, 그만두었다.


 "죽여버리지 그랬어."


 나는 진심이었다. 그녀는 아주 작게 움찔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못 듣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는 더 힘주어 말했다.


 "다음에는 꼭,"


 박살을 내 버려, 와 목을 졸라 버려, 사이에서 고민하는 찰나, 그녀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녀의 몸부림에 얄팍한 의자는 뒤로 밀려 나가떨어졌다. 왕소라가 내 팔과 어깨를 잡았다. 이를 악무는 자존심도 소용 없었다. 절규에 가까운 흐느낌이, 내 귀 바로 옆에서 맴돌았다. 그녀의 숨소리가 내 몸을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단단히 붙들었다. 더 이상 무너지지 마, 왕소라.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 다음에 위로의 몇 마디, 기억나지 않지만.

 하지만 마지막으로 했던 말들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 말을 들은 그녀가 울음을 그쳤던 것도. 그래, 그 순간 그녀는 내가 얼마나 그녀를 이해하고 있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저주받은 이해의 말들.

 분명히 그 말들이 그녀를 다시 일어서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추락시켰겠지.


 소라. 너를, 우리를 무시하는 자식들은 다 죽여버려.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 거면 두려워하게 만들어. 


 그 때 내가 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었나.


 네가 죽고 나서 나는 얼마나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는가. 또 너를 비난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너를 절실하게 이해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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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림솔만 쓰고 싶다

가장 닮았으면서도 결말이 다른 악당들의 이야기.


Posted by 취_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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